저 하늘에도 슬픔이 - 김수용, 1965 영화 지껄이기

한국 영상자료원에 필진으로 참여를 하고 있다. 그 덕택에, 지난 월요일에 최초공개되는 <저 하늘에도 슬픔이> 언론시사에 다녀올 수 있었다. 65년 작품인데, 그 동안 필름이 유실된 것으로 알려져 찾지 못하다가 대만에 수출된 적이 있다는 기록을 발견하여 찾아올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런 이유로 영화에는 한문 자막이 있다.

나는 처음 알았는데, 이 때 당시에 '저 하늘에도 슬픔이'라는 책이 베스트셀러였다고 한다. 이 책은 찢어지게 가난한 이윤복이라는 대구 대명초등학교에 다니는 학생이 쓴 일기를 엮은 것으로, 일기를 본 담임선생이 너무 가슴이 아파 이걸 출판시켜 윤복이의 생활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도록 하려했다고 한다. 의외로 책은 엄청나게 팔려 나갔고 영화까지 제작이 됐는데 이 영화역시 30만명이라는 대흥행. 이 정도면 지금의 천만관객 정도였다고 하니 그 위엄이 어마어마하다.

그렇다고 이 작품이 <안네의 일기>같은 정도는 아니고, 찢어지게 가난했던 시절 이윤복이라는 소년가장의 아동수난극이다. 윤복이는 진짜 너무 가난해서 버려진 움막에 산다. 아버지는 병에 걸려 일도 못한다. 아니 그 이전에 정신머리가 썩은 어른인데 누가 동정해서 몇 푼이라도 쥐어주면 그걸 들고 노름판으로 달려가는 그런 양반. 엄마는 도망을 갔고, 동생도 셋이나 된다. 윤복이와 동생 순나는 껌을 팔거나 동냥을 해서 국수같은 걸 사서 가족을 먹인다. 그것도 매일 그럴 수는 없고 며칠에 한 번씩. 굶는 날도 여러날.
이러다가 그의 담임 선생인 김동식 선생이 윤복이의 일기를 출판해 베스트셀러가 되고 유명해지고...뭐 그런 이야기.

이런 식의 영화가 옛날에는 많았는데 80년대를 넘어가면서 거의 없어져 지금 보면 오히려 그리 지루하지가 않은 느낌이다. 뻔하지 않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이 영화는 60년대 대구, 서울을 오가며 촬영되었는데 당시의 시대상을 볼 수 있는 점이 재미있다. 잘 곳이 없는 사람들에게 10원을 받고 한 방에 몰아넣어 재워주는 곳이 있기도 하고 구두닦이, 껌팔이 등등 지금은 사라진 직업들이 많이 보인다. 광화문, 남대문 쪽 전경들도 좀 나오는데 지금과는 많이 달라져 있어서 신기하고 그렇다.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어른들을 묘사한 장면이었다. 윤복이가 어떻게든 먹고 살려는 모습이 영화의 2/3인데 어른들은 그를 존나 방해한다. 막장 아빠는 물론이고 껌을 팔고 있는데 다 산다고 달라고 해서 도망가는 놈, 어렵게 구두닦이 기반을 마련했더니 누구허락 맞고 장사하냐며 뺏는놈, 지도 거지면서 돈 내노라고 하는 어른 거지, 윤복이를 납치 감금하는 깡패들. 담임 선생인 김동식 선생을 빼고는 믿을 어른이 단 한 명도 없다. 당시의 젊은 감독 김수용은 이미 세상이 어둡고 거친 곳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다. 60년대면 한참 어려울 시기니 각박하긴 했을거다. 이건 그 나름대로의 리얼리즘이었을 것이다.

반면에, 김동식 선생은 정말 세상에 없을 사람처럼 그려놨다. 그는 오로지 학생들만 생각하는 교사인데 심하게 말하면 거의 미친사람처럼 그려놨다. 그는 하루 24시간 애들생각만 하고, 월급을 받으면 애들을 위해 다 쓴다. 김선생을 엄청 좋아해서 혼사가 들어오자 그는 상대 여자에게 대놓고 나는 돈 못벌어다 준다. 생활을 할 수 있겠냐고 말한다. 그래도 같이 하겠다고 다짐을 받고 결혼을 하는데, 식을 올린지 열흘만에 결혼반지를 팔아서 아이들을 돕잔다. 이건 천사와 미친사람의 경계를 생각하게 하는 존나 오묘한 장면이다.

그런 식으로 윤복이를 괴롭히는 세상의 어른들과 김동식 선생의 대비가 너무 극명하다보니 후반부 윤복이의 책이 출판되고 유명해지는 장명이 어쩐지 꿈같기도 하다. 완급이 없이 그냥 스토리가 흘러가는 대로 쭉 치고나가게 냅뒀다는 느낌이랄까.

김수용 감독은 영화가 끝난 후 이루어진 질의 응답시에 자신은 아직도 상업영화와 예술영화의 차이를 모르겠으며, 이 영화 역시 이렇게 찍어야 한다고 느꼈기 때문에 이렇게 찍었을 뿐 다른 생각은 없었다라고 말했다. 물론 실화를 기반으로 했기 때문에 어차피 일어난 일, 대비나 비례 같은 것에 그리 연연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저렇게 진행이 된다고 해서 나쁠 것도 없다. 아마도 9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낸 나니까 저 이야기의 악인과 선인의 극명한 대비에 이질감을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악인으로 나온 인간들은 저 때나 지금이나 똑같군..하는 생각이 드는 반면 김동식 선생은 그냥 영화적 장치네...하는 생각이 들었다. 별로 세상이 나아지질 않았나보다. 아니, 이 영화가 당시 엄청난 흥행을 했다는 점을 생각해보니 세상이 더 나빠진 것 같다.

덧글

  • 블랙하트 2014/04/24 13:51 #

    비슷한 영화로 '엄마 없는 하늘아래'라는 작품이 있었죠. 꽤 인기 있었는지 3편까지 나왔습니다.
  • 꽁치 2014/04/24 20:02 #

    그렇군요. 어쩐지 6-70년대에는 애들이, 80년대에는 여성들이 엄청난 수난을 당한 것 같습니다.
  • 동사서독 2014/04/24 17:34 #

    이런 류의 아동수난영화를 국민학교 시절 단체관람의 형식으로 감상했던 기억이 납니다. 비슷한 스타일의, '간난이'란 제목의 드라마가 인기를 끌기도 해었지요.
  • 꽁치 2014/04/24 20:02 #

    그런거보면 사람들이 좀 가학적인 면이 있는 것인지 아니면 어려웠던 시절을 공감해서 인기가 있는 것인지 좀 헷갈리기도 해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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