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 - 애정결핍이 두 남자에게 미치는 영향 영화 지껄이기

<사도>를 봤다. 이준익은 늘 사극을 했을 때 흥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는 내 생각엔 영화를 '잘' 만드는 사람은 아니다. 개인적으로 그의 영화 중 가장 좋게 본 영화는 <님은 먼곳에> 였고, 경제적인 씬과 '이때 이게 나와야 되는데' 하는 부분을 적절히 긁어줄 줄 아는, 그런 감독이라고 생각한다. '사극'은 그런 면에서 괜찮은 소재다. 역사와 픽션이 만났을 때, 이 둘의 조화를 잘 만지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이 '만지는' 이라는 말의 의미가 '작가'로서와 '대중'으로서가 판이하게 다르다. 이준익은 '대중'으로서의 부분을 잘 만지는 감독이라고 생각한다.

<사도>는 영조와 사도세자의 부자 관계가 어떻게 파국으로 치달았는지에 대한 영화다. 우리는 어린시절부터 '뒤주에 갇힌 불쌍한 세자'로서 사도를 익히 들어왔다. 나만 그런진 모르겠지만, 이 이야기는 항상 조선 역사의 하나의 슬픈 에피소드로서 인식되었다. 그냥, 이런 세자도 있었단다. 그래도 정조라는 훌륭한 왕을 남겼지... 라는 느낌이다. 우리는 사도세자에게 연민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게 왜 그렇게 되었는지는 잘 모른다. 그냥, 그런 불쌍한 사람이 있었지. 레 미제라블. 이다.

그러나. 이 영화가 잘 만든 영화냐.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물론 재밌다. 이준익은 항상, 자신이 다루는 것이 어떤 부분에서 재미를 가질 수 있고, 그 재미의 함량이 얼마나 되는지를 잘 아는 감독이다. 이 말은, 그는 오버하지 않는다는 얘기며, 필요한 수준에서의 재미만을 추구한다는 얘기다. 그 정도 수준에서, 재밌다. 

전적으로 애정결핍에 기댄 이야기다. 한국에서 대부분의 사람이 가지고 있는 것이 있다면 트라우마와 애정결핍이라고 생각한다.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히기 까지의 과정은 한 소년의 인정투쟁이 실패하고, 끝까지 부모를 잊을 수 없었던 착한 아들의 절망이다. 흔한 이야기 아닌가? 이 사회에서 부모의 마음에 드는 사람이 몇이나 있으며 부모를 버릴 수 있는 자식은 또 몇이나 있겠는가. 그런 식으로 거의 죽기를 각오하며 회사에 나가고, 불행할 것을 뻔히 알면서 결혼을 한다. 이준익 감독은 이런 면에서 이 이야기가 통할거라는 확신이 있었던 듯 하다. 그리고 나는 그 판단이 옳다고 본다. 우리는 어떻게 스스로 행복해질 수 있을까. 아비를 밟고 나서야 영웅이 될 수 있었던 오이디푸스에서부터 결국 뒤주에서 죽을 수 밖에 없었던 사도세자와 그리고 불행에 익숙해진 우리 젊은 친구들을 생각한다. 무엇이 될 것인가. 삶 속에서 나는 어떻게 해야하고, 어떤 길로 가야하는가. 죽을 때까지 증오와 사랑을 오가며 결국 이도저도 아닌 상태로 그냥 불쌍할 뿐인 사람이 있었다. 우리는, 어떻게 행복해져야 할 것인가? 내게 <사도>는 이런 의미로 다가왔다.

덧글

  • anchor 2015/09/22 10: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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