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실한 나라의 앨리스> - 어쩌란 얘긴가? 영화 지껄이기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를 봤다. 영화의 주인공은 제목이 무상하게도 정수남이라는 여자다. 이 여자의 삶을 다룬 영화다. 중학교를 졸업할 무렵 집근처의 공장에 여공으로 취직을 할지, 고등학교에 진학하여 무려 '엘리트!'가 될지를 고민했던 수남은 엘리트의 길을 선택하고 이후 막장으로 치닫는 롤러코스터에 몸을 싣는 꼴이 되어 버린다.

많은 영화가 스쳐지나간다. <친절한 금자씨>,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 <여인잔혹사 물레야 물레야>, <영자의 전성시대> 하여간 비극적인 여인의 삶을 다룬 영화는 그냥 머리 속을 다 스쳐지난 것 같다. 그렇다고 뭐 비슷하다거나 하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더 나아가지 못했을 뿐.

영화는 충분히 재미있게 볼만했다. 현재 '헬조선'의 상황을 빗대어 보여준 것이 감독의 목표였다면 뭐. 그럭저럭 해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수남이 사는 시대를 생각해보면 이거 약간 사기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드는 것이다. 고등학교를 진학하고 첫 직장에서 286 혹은 그 이하의 것으로 보이는 컴퓨터에 밀리는 걸 보면 수남은 잘 해봐야 70년 초반에 태어난 사람 같다. 거기에 주산(부기는 확실히 따라왔을 거고) 타자기... 이해는 간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이런 식의 끝장나는 비극은 만들지 못했을거다.

이 영화의 한계는 이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감독이 어떻게 이야기하는지는 몰라도, 나로선 약간 비겁하다는 생각이다. 삶이 각박하고, 좆같음을 말하고 싶었다면 동시대를 비췄어야한다. 한참 과거의 이야기를 현재로 끌어올리는 방식은 영화가 아니고서도 충분하다는 생각이며, 심지어 이런 식의 이야기는 지금까지도 수두룩 빽빽하다.

모르겠다. 그냥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 같은 걸 너무 재미있게 봐서 그런걸 만들어보고 싶었던건지, 아니면 정수남이라는 한국형 비극의 주인공을 보여주고 싶었던건지, 그도 아니면 헬조선은 예나 지금이나 계속 헬이었다는 걸 말하고 싶었던 건지...

개인적으로 이 영화가 볼만했던 이유는 배우들의 공이 제일 크다고 생각한다. 이정현을 필두로 서영화, 명계남, 이준혁, 정영기, 지대한(올드 보이 이후로 너무 오랜만이신 듯...!) 거기에 카메오로 이용녀, 오광록이 출연하고 있어 연기 보는 재미만으로도 90분은 충분히 버틸만하다. 나이브한 연출이라고 하기는 나름대로 공을 들인 티가 난다. 그저, 모티브를 발전시키는데 실패한 것으로 생각된다. 이야기가 너무 어둡고 하나도 안 웃겨서 추천하기는 어렵지만 보고 싶다는 사람을 말릴 정도로 후지지는 않다.

'생계밀착형 코믹잔혹극'이라는 포스터의 문구가 눈에 띈다. 대체 이 영화의 어디에 코믹이 있는데?

음악이 익숙해서 보니 장영규더라. 복숭아 이름으로 크레딧이 올라온게 아닌걸보니 개인작업인 듯. 복숭아보다 훨씬 좋다.